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시와라 간지 (문단 편집) == 세계최종전쟁론 == ||[[파일:external/blog.creaders.net/20090614180948813483.jpg]]|| ||참모본부 작전과장 시절(1935년)|| 1928년 1월. 육군 내부 공부 모임인 목요회에서 이시와라 간지는 〈우리의 국방방침〉이란 강연을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세계최종전쟁론(1940)이라는 소책자를 집필하였다. 세계최종전쟁론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서 이시와라는 군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의 전쟁양상을 예측했는데, 국가의 총력을 기울이는 형태가 되리라 하였다. 후반부는 내용이 몹시 짧아서 사실 분량적으로는 전반부와 대등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시와라의 종교적 믿음을 후반부에 집중하여 서술하였다. 이시와라 간지는 후반부에서 말법시대가 오는 시점을 계산하려고 석가모니의 열반 연도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을 한다. 그런데 이시와라는 이 중요하기 그지없는 후반부의 숫자 계산에서 일절 연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명을 매우 두리뭉실하게 한다. 세계최종전쟁론을 다 읽어보아도 정확히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소리인지 알기 어렵다. 이시와라는 어떤 불교학자의 주장을 따랐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본인이 저서를 집필할 무렵을 불멸 후 2430년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시와라가 생각한 석가모니의 입멸 연도는 기원전 490년쯤이 된다. 이시와라가 따른 이론에서는 불멸 후 2500년 뒤에 말법시대가 온다 하므로, 대략 2010년 무렵에 말법시대가 된다. 집필 시점에서는 70년 뒤인데, 전반부에서 자기가 군사적으로 50년쯤 뒤에 큰 변동이 온다고 예측한 바와 별로 차이가 안 난다고 물타기하여 20년을 끌어당겼다. 그렇다면 말법시대는 1990년쯤이 된다. 이시와라의 종교적 계산에는 일련종 계열 종교인 [[국주회]](國柱會)의 영향이 있었다. 이시와라는 국주회를 설립한 다나카 지카쿠(田中智學 1861-1939)라는 종교인의 주장을 믿었다. 다나카는 1904년 출판한 '묘종식목강의록'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 "본화의 가르침을 널리 펴려는 현명한 왕과 본화를 믿지 않으려는 많은 어리석은 왕들의 다툼이 될 때에는, 여기서 세계의 큰 전쟁이 일어난다.… > > (중략) > > …비로소 전 세계 국가들이 참회하고 깨달아, 본화의 큰 위신력을 두려워해서, 세 가지 큰 비법의 큰 진리를 생각하게 될 것이며, 비로소 세계 각국의 왕과 신하 모두가 이 법에 귀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카쿠는 1918년에 한 강의에서 "지금으로부터 48년 후(1966), 일천사해개귀묘법(一天四海皆歸妙法)이 일어난다."라고 주장했다. 간지는 세계최종전쟁론에서 지카쿠의 주장을 신뢰하여 인용하였다. '일천사해개귀묘법'이란 천하가 법화경(여기서는 니치렌의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저 텍스트는 이시와라 버전으로 번역되어, '세계최종전론(1940)'에 다음과 같이 변해버렸다. >니치렌 성인은 장래에 대한 거대한 예언을 하고 있다. … 그것이 어떤 것이냐면,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에 일찍이 없던 큰 전쟁이 반드시 일어난다. 그때 혼게조교가 다시 세상에 오셔서, 본문의 계단을 일본국에 세우고, 거기서 '''일본의 국체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의 통일을 실현할 것이다.''' 그렇게 예언하시고 돌아간 것이다. 이시와라가 매우 두루뭉술하게 설명하였고, 앞에서 한 소리와 뒤에서 한 소리가 충돌하기도 하지만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1966년쯤 천하(동양?)가 다나카 지카쿠의 주장대로 니치렌의 가르침에 귀의한다. * 1970년쯤 내(이시와라) 주장대로 총력전 형태로 세계최종전쟁이 일어나 동서양이 대결하며 단기간에 끝난다. * [[법화경]]의 예언대로 1990년쯤 세계가 단일국가로 통일된다. 목요회에서 이시와라 간지가 강연할 당시 동석하여 이 주장을 듣던 통제파 장교인 [[나가타 테츠잔]][* 그나마 [[일본군]] 중에 판단력은 정상적인 인물이었다]은 '왜 [[태평양 전쟁|미국과 전쟁]]을 해야 하나', '[[중일전쟁|중국 진출]] 같은 위험한 짓을 무릅쓰면서까지 [[대일본제국]]이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가' 같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을 했다. 이시와라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일본의 전쟁수행력 따윈 문제가 아니다. '전쟁은 일어날 것이고, 일본은 거기에 이겨야 한다'고 '''경전에 적힌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일천사해개귀묘법을 위해, [[만보산 사건]], [[나카무라 사건]] 등 [[봉천군벌]]과 일본과의 국지적 충돌 때마다 암약하면서 만주 침탈의 기회를 노렸고 1931년 9월 18일, [[이타가키 세이시로]]와 함께 [[류탸오후 사건]]을 조작, [[혼조 시게루]]를 부추겨 급기야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이시와라는 일본이 이 최종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대국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이 풍부한 만주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실천에 옮겼다. 결국 중앙정부의 맛간 대응과 관동군의 폭주가 더불어 만주는 [[일본제국]]의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